"달리기를 해볼까?" 뜬금 없이 들었던 생각입니다. "에이, 뭐야"하고 지나치기엔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할 정도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10년 전에 공대 2학년 말. 통과 못한 "공업 수학"의 계절학기 수업을 듣다가 "연극 해볼까?" 라고 떠올렸던 때가 생각이 났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고, 평소에 바래왔던 일도 아니고, 전혀 취미가 없는 일을 갑자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그때나 지금이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 까요. 게다가 요즘처럼 푹푹 찌는 더위에 달리기라니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돈 쓰는 일에 생각보다 엉덩이가 가벼운 저는 옛날이라면 운동복 결제, 러닝화 결제, 에어팟 결제 등등 이미 카드로 러너를 완성 시켰겠지만, 그동안 운동에 버려왔던 돈들을 떠올리니 제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달리기에 대해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아무래도 한 이틀 뛰고 안할거 같아서; 우리 모두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전 그동안 돈을 너무 버려와서 평생 산책말곤 운동을 하지 않겠다. 라는 선언까지 한 참이었거든요.
그래서 한번 책을 사봤습니다. 이 책을 산 특별한 이유는 없고 밤 10시에 결심을 했는데, e-book으로 나온 책이 얼마 없어서... 원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고 싶었는데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제 첫 달리기 책으로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작가의 유머가 제 스타일이에요. (이 책의 작가는 만화 심슨의 작가.)
달리기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후 나는 달리기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읽는 것 자체는 쉬웠다. 나는 내 학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독서 우등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무지한 초심자에게 정보를 주면서 계속 흥미를 돋우는 책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진성 울트라마라톤 러너들과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사람들(나 자신을 기껏해야 1종 경기 인간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을 위한 책들은 많았지만 땅을 긁는 수준의 초보 러너를 위한 책은 전혀 없었다. 마라톤을 네 시간 안에 완주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남녀, 아마도 당신과 나 같은 남녀를 위한 책.
<마라톤에서 지는 법>
어쩜 저와 똑같은 짓(?)을 했네요. 달리기를 결심 해놓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달리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는 일이라니. 저는 제가 하면서도 좀 웃긴일 아닌가? 란 생각을 했는데.. 여튼. 책도 읽고, 작년에 요가 하겠다고 사놓은 운동복도 꺼내 놓고, 어플도 한번 다운받아보고, 삼일간에 걸친(대체 왜?) 준비 끝에 첫 날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지만.. 운동복이 적합하지 않아(제 기준) 더워 죽을뻔함. 어플 사용법 모름(아직도 모름). 달리기 시작점 까지 가다가 가는 중에 지침. 첨 부터 마구 잡이로 달려서 페이스 조절 실패. 일찍 출발했지만 이미 해가 떠서 너무 더움. 썬크림 안발라서 얼굴이 새빨게짐. 이라는 상처만 안고 첫 날의 달리기가 끝이 났습니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내가 달리기를 더이상 지속하지 못할 이유에 대해 리스트가 나와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릴때의 기분과 끝마치고 돌아와서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면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일단 나이키 아울렛 매장으로 달려가서 운동복을 지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루 밖에 안 했지만, 지를 만한 가치를 느꼈음..)
세일 품목과 비세일 품목의 적절한 조화로 운동복을 구매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1. 달리는 시간을 당긴다. 기상 시간인 5:33분에 바로 나가거나 기상시간을 좀 더 당긴다. (한번 달려보고 결정할 것)
2. 달리는 코스까지 가는데 지치 니까 출발할때부터 달린다.
3. 준비운동, 어플 사용법 준비.
4. 썬크림 덕지덕지 바른다.
드디어 두번 째 날.
5:33분에 일어나 썬크림을 바르고 나오는데,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달리기에 딱 적합하게 느껴졌습니다. 신이나서 시작부터 신나게 달리다가 또 페이스 조절 실패로 인해 1키로 정도 후부터는 계속 걷기...
이대로 괜찮은가 싶었는데, 그때 노트에 적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그다지 긴 거리를 달릴 수는 없었다. 20분이나 기껏해야 30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헉헉 하면서 숨이 차버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랫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달리는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도 어쩐지 좀 쑥쓰러웠다. 어쩌다 이름 뒤에 붙는 소설가라는 직함이 쑥쓰러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쓰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힘을 얻고, 다시 계획 변경.
아직 달리기 코스로 가지 않고, 아파트 내에서만 달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바퀴만. 더 할 수 있어도 멈추고, 못할것 같아도 3바퀴는 뛰어서 일단 몸에 익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한지 이제 사흘 정도 된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파트 3바퀴도 헥헥 대지만 이번에는 포기없이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달리기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제가 경험 했던 다른 운동과 달리 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운동하는 장소에 시간맞춰 가지 않아도 되고, 이런 저런 점들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바꿔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외국에 나가거나 여행을 가도 그 장소에서 운동화와 운동복만 챙겨가면(꼭 없더라도) 할 수 있죠. 그리고 요즘 같은 더위에는 늦게나가면 죽음이기 때문에, 늦게 일어나도 싶어도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기상을 해야하게되서 제 생활패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직은 마라톤에 도전할 생각까지는 들지도 않아요. 아파트 3바퀴에서 5바퀴 정도만 돌며 달리는 생활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베겨가는 근육통을 즐기고, 땀에 젖은상태로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하는 기분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달릴 예정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되는 잠만보의 새벽기상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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